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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나눠먹기라는 기초연구사업, 대학 우수 연구자의 성장 사다리다(호원경; 한겨레; 2023. 09. 14)

관리자 │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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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부가 나눠먹기라는 기초연구사업, 대학 우수 연구자의 성장 사다리다 : 왜냐면 : 오피니언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왜냐면] 호원경, 서울대 명예교수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정부가 대학 연구의 기반을 이루는 기초연구사업까지 재정운용 비효율의 주범으로 평가하며 1500억원이 넘는 삭감을 단행했다. 나눠먹기식 소규모 사업이 난립하고 있으니 소규모 과제를 정리하고 대규모 전략 프로젝트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이다. 즉, 나눠먹기식에서 집중과 선택으로 전환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팩트 체크’를 해보면, 기초연구사업은 나눠먹기식 사업이 아니다. 과제 수가 2만개가 넘지만 전국 대학에 4만명이 넘는 이공계 전임교수와 정확한 숫자는 모르나 전임 교수보다 적지 않을 비전임 연구원까지 대상이라 2023년 기준 지원자 4명 중 3명은 떨어지는 경쟁률 높은 사업이다. 연 3천만원의 소액과제부터 10억원 이상의 대규모 과제까지 사다리형 구조여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연구기회를 제공해 연구자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우수 연구자들은 대규모 과제에 도전해 고도화된 연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정교하고 촘촘하게 설계된 사업이다.


둘째, 소액 과제라고 무조건 연구 성과가 작으리라는 생각은 맞지 않는다. 인용 상위 1% 논문 실적에 대한 분석결과를 보면, 과제당 연구비 1억원 미만의 교육부 기본연구와 보호연구 사업의 성과가 연구비 규모가 큰 사업보다 작지 않아 소액 연구비라도 안정적으로 꾸준히 투입하는 것이 우수 논문 성과에서도 효율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기초연구사업은 연구개발 비효율의 주범이 아니라 집중과 선택을 내세우는 국책 기획사업보다 효율성이 월등히 높은 사업이다. 연구비 예산으로는 정부 연구개발의 8.6%에 불과하지만, 과학기술인용색인(SCI)급 논문 성과의 44%, 특허 성과의 14%를 감당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월등한 효율의 비결이 저변이 튼튼하고 위로 올라가는 길이 열려 있는 사다리식 구조와 연구자 주도로 자유로운 주제 설정이 가능한 자유공모 방식에 있으며, 국책사업에도 이런 구조를 도입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기초연구사업을 나눠먹기식 사업으로 낙인 찍어 삭감하기로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그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의 내용을 보면 더욱 충격적인데, 우수 연구자에게 지원하는 연구비를 늘리기 위해 연 1억원 미만의 소액과제 사업은 없앤다고 한다. 특히 교육부 사업 대부분을 정리해 교육부를 대학 연구에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 부처로 바꿨다. 과제당 연구비를 키우기 위해 무작정 소액과제를 없애겠다는 것은 작은 집과 큰 집이 어우러져 있는 마을에서 작은 집을 다 부숴 큰 집으로 대체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비전임 연구자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창의도전연구 사업까지 정리 대상이라 젊은 연구자들이 대거 실험실 밖으로 내쫓길 위험에 처했으니 대학 연구 생태계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에 불리한 소외 분야에서 연구비를 받을 기회가 사라져 연구의 다양성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


정부가 내세운 전략과제와 글로벌 연구의 확대는 그 필요성부터 의문이다. 특정 분야를 전략적으로 집중 지원하고 싶다면 하향식 기획과제를 수행하는 국책사업을 통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굳이 기초연구사업에까지 기획이 필요한 전략 과제를 추가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글로벌 연구를 확대하는 이유로 국내 연구진 중심의 폐쇄적 연구체계를 지적했으나 우리나라는 이미 과학기술 논문의 3분의 1 이상이 해외 협력 논문이다. 글로벌 연구가 부족한 특정 분야가 있으면 장려할 수는 있겠으나 기초연구사업의 모든 세부 사업에 획일적으로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찾기는 어렵다.


연구자들이 바라는 건, 신진 때 한번 파격적 지원을 받고 그다음에는 연구비 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시작한 연구를 평생 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이다. 기초연구사업은 그런 연구환경 구축을 목표로 설계해 연구자들의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해 온 사업으로 대학 연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다만 연구비 5천만원 안팎의 과제가 반이 넘고, 적정 연구비라 할 수 있는 2억원 이상 과제는 3%도 되지 않아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건 단점이다. 적정 연구비 규모의 과제 비율을 늘리려면 추가 예산을 투입해야지, 소액과제를 없애는 게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대학 연구 생태계를 위태롭게 하면서 국가 연구개발 효율성을 높일 수는 없다. 기초연구사업 예산 삭감과 구조조정 계획을 재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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